비오는 날, 전주-구례-(하동)-남해 ├광주, 전라, 제주

6월의 마지막 주말에 또 큰 맘 먹고 여행을 계획했었으나, 아뿔싸 토요일에 큰 비가 예보되어 있었다. 근데 숙소는 예약해 놨고...여러모로 여행을 미루기보다는 그냥 강행하는 쪽으로 굳어졌었다. 그리하여, 비오는 날에도 즐길 수 있는 내용으로 여행 계획을 짜게 되었다.

집의 차량을 이용할 수 없을 때는 보통 거점을 정해 놓고 차를 빌리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전주가 그 거점이 되었다. 전주는 다 좋은데 SRT로 한 번에 갈 수가 없어서...일단 7시 40분에 출발하는 SRT로 익산역까지 간 후 거기서 무궁화호로 환승하는 티켓을 끊어놨다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5시 40분에 출발하는 SRT로 가게 되었다. 이 열차는 익산역에 6시 55분에 출발하는데 전라선 무궁화 첫차도 익산역에서 6시 55분에 출발하게 된다(...) SRT 무시하는겁니까...

익산역에서 다음에 출발하는 전라선 열차를 기다리는 것보다 나은 방법이 있다. 바로 익산역 앞의 환승정류장에서 전주까지 가는 버스를 타는 것.

첫차가 7시라 좀 촉박하긴 한데 첫차를 못 타도 그 다음차가 7시 15분에 있기 때문에 걱정 없다. 다만 낮에는 텀이 좀 길어지는 시간대가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주의를...

이전에 8시 몇분 차를 탔을 때는 터미널을 경유해서 갔었는데 이 차는 바로 전주 방향으로 향한다. 차 막힐 일도 없었기에 30분도 안 걸려서 덕진광장에 도착했다. 참고로 덕진광장에서 내리는 게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는 것보다 300원 싸다(각각 3,300원/3,000원). 이럴 줄 알았으면 호남제일문까지 끊을걸(...) 어차피 목적지 남부시장까지는 시내버스로 환승해야 하기 때문에 기린대로에 가까운 덕진광장이 좀 더 편리하다.

렌터카 업체가 문을 열기 전에 도착한 관계로 남부시장에서 아침을 먹고, 풍년제과에서 간식거리를 산 후 길을 나서니 비가 생각보다 많이 와서, 렌터카 회사에서 차를 빌린 후에 덕진공원으로 향하기로 했다.

이맘때면 덕진공원에는 연꽃이 하나둘 피기 시작한다. 아마 이번주나 다음주 쯤이 절정이려나...

비가 오니 연잎마다 물이 고여 있다가, 물이 좀 많이 고여 이파리가 못 버티겠다 싶으면 고개를 숙여 물을 쭉 따라낸다. 비 오는 날에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구경거리.

아따 연꽃 징하다(...)

참고로 호수를 가로지르는 현수교가 있었고(이전 포스팅 참조), 그때도 조만간 철거하고 재가설한다는 안내가 있었는데, 이번에 가 보니 역시나 철거해 놓았다. 아마 새 다리는 내년쯤에나 볼 수 있으려나.

좀 좋은 카메라를 갖고 있으면 접사도 해 볼 수 있었을 텐데 ㅎㅎ

이정도 하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한다. 중간에 있는 유일한 (제대로 된) 휴게소인 오수휴게소에 잠깐 들러 낮잠도 청해 본다. 차 천장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ASMR? 삼아 잠시 졸다가 다시 출발해서 도착한 곳은...

섬진강 대나무숲이었다. 순천(황전)에서 구례까지 이어지는 17번 국도와 섬진강 사이 길지 않은 구간에 대나무숲 산책로를 조성해 놓은 것. 죽녹원같이 대규모는 아니지만 그래도 비오는 날 분위기 있게 산책할 만 하긴 하다. 

내비로는 화산주유소를 찍고, 주유소를 지나 본선 진입로 옆으로 굴다리로 내려가는 샛길이 있는데 이곳으로 내려가면 된다.

대나무숲길 끄트머리에서 바라본 구례 쪽 섬진강.

구례에서 차를 다시 몰아 남쪽으로 가던 중, 피아골 졸음쉼터에서 바라본 섬진강.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한 풍경이다.

남해로 진입하기 전 잠깐 차를 세워 들른 노량대교 전망대. 윗쪽에 전망데크도 있지만 이쯤 되니 비바람이 심해서 굳이 올라가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이 블로그에서도 이미 소개했으니...

예전에 남해에 들렀을 때 먹었던 맛있는 짬뽕이 생각나 들렀던, 삼동면 지족리의 "하동균중화요리". 다행히도 이곳은 브레이크 타임이 따로 없어 3시라는 어정쩡한 시간에도 식사를 주문할 수 있었다.

예전에 한번 와 보고 맛에 감탄한 후, '비 오고 뜨끈한 게 땡겨서 그럴지도 모르니 다시 한번 와서 맛 검증을 해 보자'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도 비 오는 날에 오게 되었다. 아무튼 비 오는 날 남해 최고의 짬뽕 한 그릇 먹고 갑니다.

지족에 왔으면 이 곳에를 또 안 들를 수 없다. "아마도책방". 이 날은 맘에 드는 책을 한 권 골라 샀다. "남해여행자"라는 남해여행 그림책(?). 마산에 사는 저자가 남해 뚜벅이 여행을 한 이야기를 그리고 쓴 책이다. 교보문고 같은 데에 있었으면 한번 휘리릭 넘겨보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는데, 여행 기분에 책을 한 권 업어가게 되었다. 이 책은 남해여행의 좋은 친구가 되었다.

언제나의 '그 게스트하우스'에 오니 비가 정말로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오늘은 밖에 안 나갈 테다!

읽을 책도 많고! 다만 이날따라 뭔가 이거다 하는 책이 없어서...책장을 많이 좀 뒤적거렸는데 사장님이 이상하게 보진...않으셨겠지?

다행히도 비가 잦아들기 시작해서 자기 전에 밖에 잠깐 나와보았다. 이제 남해 고인물 소리 들어도 할 말 없지만 어쨌든 비오는 날 남해의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 간다.



덧글

  • han 2019/07/07 17:12 # 삭제 답글

    호남고속철 개통후에도 고속버스가 의외로 선전하는건 해당 노선의 이용자들중 상당수가 해당 도시가 최종 목적지가 아니고 버스를 타고 계속 가야한다는 점이죠.그러다 보니 광주광천 터미널의 경우엔 지금은 위세가 한풀 꺾였지만 한땐 왠만한 국제선 공항을 방불케할 정도로 사람이 미어터졌죠.
  • Tabipero 2019/07/07 20:22 #

    전라선에 SRT가 다니게 되거나, 환승연계가 기막히게 된다면 버스 수요를 어느정도 가져올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전주에서도 강남쪽 가려면 외곽에 있는 전주역을 거쳐 귀찮게 중간에 환승하느니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버스 타고 한번에 가는게 나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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