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엔딩, 반곡역 ├중부(충청,강원)

홋카이도라도 가지 않는 이상 올해 마지막 벚꽃 구경이 되지 않을까 싶다. 찾아보기로는 반곡역의 벚꽃은 다른 곳보다 다소 개화가 늦다고 하는데, 개체차도 있겠지만 내륙에다 고도가 높아서 그런 듯.

근 6년만의 방문이었다. 다시 찾아간 이곳은, 바뀌지 않은 건 역 건물이나 그 주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예전의 포스팅과는 너무도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인근의 원주 혁신도시 조성이 거의 완료되어 있었던 것. 각종 공공기관 건물도 들어서 있었다.

반곡역에서 살짝 내려가서 찍은 사진. 멀리 높은 건물이 보인다. 공공기관과 배후 아파트 단지들이 늘어서 있는 계획도시다.


반대쪽으로. 약간 고지대에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역사가 보인다.

이런 연유로 반곡역에는 다시 열차가 서기 시작했다. 그것도 상/하행 각 4편씩으로 의외로 많이 정차한다. 시간대 배분을 보면 대체로 아침시간대 하행, 저녁시간대 상행으로 서울 혹은 연선에서의 출퇴근 수요를 노린 것 같다. 또한 혁신도시가 생기며 버스 노선도 늘어 이 곳으로 접근하기가 비교적 편해졌다. 나도 원주역에서 86번 버스를 타고 이 역으로 향했다. '반곡역'이름을 붙인 정류장은 없고, 광물자원공사나 관광공사 정류장에서 내려서 걸어가면 된다.

열차가 다니게 되지 않던 역이 다시 정차역으로 부활하는 케이스는 정말 드물다...만, 머지않아 다시 열차가 다니지 않게 된다. 2018년 말에 서원주-제천 구간이 이설되기 때문. 그렇게 보면 나름대로 가치있는 방문이었다.

그러니 코레일 타임이 발동하지 않는 한, '역으로써 기능하는' 반곡역의 벚꽃도 내년이 마지막이다. 물론 이 역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와 벚나무는 매년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수령이 꽤 된 벚나무다. 이 역과 역사를 같이하고 있었으리라.

그러고보니 구 하동역은 어찌 되었으려나? 열차가 지나가자 따라 내리던 꽃비가 아직도 기억난다.

이곳도 바람이 부니 꽃비가 내린다.

대합실은 예전 갤러리 그대로 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문 바깥으로 보는 벚나무도 꼭 미술작품 같다.

벚꽃철은 일년 중 반곡역이 가장 빛나는 한 때가 아닌가 싶다. 정말 '한 때'라, 맞춰 오기가 쉽지는 않지만...

천장에 설치된 풍경도 그대로였다. 지금은 대합실 양쪽 문을 열어놓아, 이따금 바람이 불면 조그맣게 소리가 들린다.

때마침 라디오에서는 '벚꽃 엔딩'이 조그맣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역이 이렇게 붐비는 것도(비록 그 중 열차를 타는 사람들은 몇 없을지라도), 열차 도착 안내방송이 들리는 것도 생소하지만 반갑다.

중앙선의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는 시멘트 화차. 인터넷에서 중앙선에 대해 찾아보다가 선로용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이 인근 기존 역 사이사이에 열차가 교행할 수 있는 신호장 다섯 개를 지어놓고 역 이름 끝자를 다 교(交) 돌림자로 지어놓았다는 이야기가 뭔가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동호인들 사이에는 '5교 시리즈'로 불렸다던가...동교, 유교, 금교, 창교, 연교 5역이다. 이제 내후년이면 5교 시리즈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겠다.

10분 가까이 연착한 열차를 타고 서울(정확히는 덕소)로 올라가는데, 이 열차 반곡역에서부터 무려 전역 정차(심지어는 석불역도!)하는 완행열차였다. 갈만 하면 서고, 출발하자마자 다음 역 정차 안내방송이 나오는 모습을 보니 좀 답답하긴 했는데, 예전에 간이역이 없어지는 걸 안타깝다느니 했던 게 부끄러워졌다. 나도 속도 제일주의의 행렬에 합류하게 된 거려나.

간이역에서 기차를 타 본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고(3년 정도 되었으려나) 간만의 기차여행에 운전대에서 해방되어 창밖 풍경을 보며 책을 읽는 건 나름대로 낭만적인 경험이었다만, 왠일인지 갔다오니 평소보다 더 지쳐 있었다. 진짜 이렇게 탈덕하는건가...내가 관심을 안(못) 가지는 사이에 또 간이역이 한둘씩 사라지는 게 아닐지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현재 용문-(서)원주간 각 역에는 고상홈이 설치되어 있는데, 배차간격은 좀 벌리더라도 4량 원맨에 셔틀열차라도 굴리면 이런 애매한(?) 중간정차역 문제도 없어지지 않을까 한다. 뭐 계속해서 수익성 개선 압박을 받는 현 환경에서는 될법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만.

반곡역은 말년에 다시 흥한 역이니만큼 열차가 오지 않게 되는 그 날까지 제 소임을 다 할 것이다. 선로가 이설되더라도 벚꽃은 계속 필 것이고 인근 주민들이 공원처럼 놀러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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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han 2017/04/18 14:54 # 삭제 답글

    철도와 벚나무가 어울리는 곳이 많네요.ㅎㅎ 일번지는 단연 진해선 경화역이죠. 지금은 벚꽃시즌 임시차만 다니지만 열차운행할땐 승차객을 기다린단 명분에 7분이나 정차해줄 때도 있었죠. 당 연 승객들도 왜 출발안하냐는 불평보단 꽃구경에 정신없었죠
  • Tabipero 2017/04/19 18:20 #

    거기는 벚꽃철에 가면 정말 갇혀버리는게 아닌가 겁이 나서 아직 못 갔네요 ㅎㅎ
    매화마을로 유명하지만 원동역도 의외의 벚꽃 명소더군요. 득량역도 있고...제가 구독하는 블로그에 누가 정리 해 놓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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