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지는 괜히 성지가 된 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데 있어 모델이 되는 장소를 고를 때, 생각없이 고르지는 않았을 거란 이야기다. 슬램덩크서부터 수많은 애니의 무대가 된 에노시마나, '쓰르라미(후략)'의 배경이 되는 히나미자와같은 전국구 관광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고, 깨끗한 자연을 자랑하는 '오네가이 시리즈'의 무대 시나노오오마치나, 근대건축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케이온'의 무대 토요사토 초등학교같은 곳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사진의 이 곳은 '빙과'라는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찻집의 모델이 된 곳이다. 타카야마 시가지에 있는 커피숍. 타카야마는 에도 시대던가...옛 모습을 간직한 보존 지구로 유명한 곳이지만, 의외로 서양풍의 가게나, 외국인이 좋아할 만한 시크한 분위기의 음식점 같은 곳도 곳곳에 있다. 보존 지구의 끄트머리에 있어, 굳이 성지순례가 아니더라도 걸어다니다 쉬며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곳이다.

가게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아닌 휴일 저녁의 샐러리맨인지, 아니면 결혼식이라도 끝나고 온 건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빙과'를 열심히 본 분이라면 저 자리에 앉아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만 항상 저 자리는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그렇다. 무엇을 숨기랴. 다카야마에서의 1박 2일동안 난 매일 한번씩 저곳을 드나들었다! 첫날은 반쯤은 성지순례로 갔지만, 둘째날 갔던 건 단순한 빠심이 아니라, 기차를 기다리면서 여행의 쉼표를 찍었던 곳임을 믿어 주셨으면 좋겠다. 그러니까...성지와 관련 없더라도 아늑하게 쉴 수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앉았던 자리. 적절한 구석자리다.
이 곳에 도착했던 시각은 저녁 5시 30분. 하지만 이곳의 문 닫는 시각은 저녁 6시라고 한다. 본의 아니게 라스트 오더.

메뉴는 탁자 밑에 프린트되어 있다. 사진이 좀 이상한 건 사실은 귀찮아서 거꾸로 찍어놓고 사진을 180도 돌렸기 때문(...)
커피, 홍차, 소프트드링크, 자가제(自家制, 공장에서 떼온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듯) 케이크, 그 외에도 지역 특산 맥주(地ビール), 안주삼을 만한 햄 같은 것도 팔고 있다. 맥주도 좋지만 거듭 이야기하자면 이곳은 6시에 문을 닫는다. 낮술은 적당히 합시다.
본래 커피를 즐기는 사람도 아니고, 저녁에 커피 마시기도 뭣해서 홍차를 시켰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류를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의 미각은 아니라서...잘 모르는 사람의 입장으로는 괜찮은 맛이었다. 커피맛의 평가는 다른 분들께 맡기고자 한다.

깨알같은 '빙과' 포스터. 두번째 사진에도 벽시계 밑에 놓인 큰 버전의 포스터를 볼 수 있다. '빙과' 오리지널 엽서도 팔고 있었고, 성지순례용 방명록도 있었다. 방명록을 쓰진 않았으니 가셔서 찾지 마세요(...)

다음날에는 홍차와 함께 케이크를 시켜 보았다. 치즈무스 케익이던가...케이크를 잘 만든다는 확신이 선다면 치즈 케이크에 도전해 보는데, 케이크 역시 꽤 괜찮은 맛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위치는 대략 이렇다('A'표시한 곳). 설명하기 애매한데, 지도에서 신호등을 기준으로 찾아가면 다리 옆 코너에 쉽게 찾을 수 있는 곳. 역에서 걸어서 10분 이내 거리다. 계속 '성지순례가 아니더라도'를 강조하는데, 역앞에 별다방 콩다방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을 곳곳에 있는 찻집이나 커피숍 중에 나름 추천할 만한 곳이다. 슈퍼호텔의 안내 지도에는 또다른 추천 커피숍이 있는데, 그곳도 한번 가볼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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