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역 - 자미원역 ├중부(충청,강원)

제천 IC에서 신호도 거의 없다시피 한 38번 국도를 가다가 예미역 쪽으로 빠진다. 거기서 함백역을 구경하고, 험하디험한 수리재를 넘으면 곧 자미원역이다. 수리재는 오르면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기분이 들고, 내리막 곳곳에는 비상제동시설로 보이는 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내려가면서도 괜시리 긴장하게 되는 곳이다. 괜히 정선을 하늘 아래 첫동네라고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나는 함백역을 중간에 들르느라 이런 경로를 택했지만, 38번 국도를 타고 가다 정선군 남면에서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게 시간면에서는 훨씬 절약이 된다.

아무튼 이렇게 도착한 자미원역은, 변압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역이었다. 역을 둘러가며 쳐져 있는 철제 울타리가 분위기를 깨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다.
대합실로 이어지는 문과 창문은 최근에 고친 것인지 의외로 번듯했다.

철제 울타리에 대해 첨언하자면, 대체로 이런 철제 울타리는 여객통과역이나 무인신호장 등에서 외부인으로부터 철도 시설물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이전 내일로 3일천하로 중앙선 전선 완주를 하면서 차창 밖으로 이렇게 울타리가 쳐져 있는 역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다만 엄연히 열차가 정차하는 역에 이렇게 울타리를 두른 것은 처음 보아서, 혹시나 예전에도 여객취급중지 이야기가 돌았었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코레일체와는 전혀 닮지 않은 글씨체다. 그마저 이곳저곳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려 하고 있다.
코레일로서는 그다지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전국 곳곳의 역들을 돌아다니며 특정 지역만의 특색이나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역명판을 구경하는 것도 큰 재미인 것이다.

10월의 연휴 첫날 이 역을 방문한 이유는 바로 이 역이 10월 5일부터 여객취급중지 대상이 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열차가 교행하는 신호장 기능만 하게 된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저 울타리도 제 기능(?)을 하게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뚜껑을 열어보니 정차횟수가 1회 줄어드는 것으로 폐역은 면하게 되었다.

그래봐야 이전부터 여객열차 정차 편수는 1일 3편밖에 안 되었다. 그것도 온전히 본선을 운행하는 열차가 아니라, 제천-아우라지를 왕복하는 4편의 열차 중 3편이 정차하는 것이었다. 10월 5일 다이어 개정 후에는 #1652는 정차하지 않게 되었다.

시각표 옆에는 명예역장 임명식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후 들러본 정선선의 간이역의 거의 모든 곳에 이렇게 명예역장을 임명하고 있었다.

열차시각과 전혀 상관 없는 시간에 가서 그런지, 대합실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시각표 및 운임표가 걸린 반대쪽 벽은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깨끗하기만 하다. 최근에 한 것 같은 말끔한 도색이 도리어 '썰렁함'을 더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선선의 역에는 바로 이 열차시간 조정 안내문과 다이어 개정 안내문이 같이 붙어 있었는데, 이 역에는 다이어 개정 안내문이 붙어 있지 않았다. 다이어 개정이 된 후에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연휴가 지나고 바로 수요일이 다이어 개정일이었기 때문에, 아마 이때쯤  열차를 계속 세우는 것으로 윤곽이 잡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대합실을 지나 승강장으로 나와 보았다. 사진은 제천/예미 방향으로 그야말로 첩첩 산중. 열차는 이 앞에 있는 터널을 지나게 되고 찻길은 저 고개를 넘게 된다. 영월 방향으로 간다면 차라리 거리는 좀 돌더라도 반대쪽으로 나와서 38번 국도를 이용하는 게 현명할 것이다.

이런 독특한 폴사인은 별어곡역에서도 볼 수 있었다. 민둥산관리역에서 맞춘 건지;; 곳곳에 이가 빠진 콘크리트 경계석도 별어곡역과 쏙 닮았다. 하루에 손에 꼽을 만한 정도의 승객이 타고 내리는, 여객취급중지를 하네 마네 하는 역에는 경계석 교체는 언감생심이고 폴사인 하나 번듯하게 세워주는 것만 해도 과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민둥산 역은 구 증산역으로 태백선과 정선선이 갈라지는 곳, 조동역은 태백선과 함백선이 갈라지는 곳이다.

민둥산 방향으로는 내리막이 시작된다.

나도 이 역에 대해 검색해보고 알았지만, 이 곳은 추전역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역이라고 한다. 1973년 고한선과 황지선이 이어지기 전까지는, 이 역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역이었던 것이다(태백선은 그 역사가 좀 복잡한데, 한때나마 민둥산에서 정선까지 이어지는 현 정선선이 본선 취급을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추전역의 후광이 너무 컸던 것인지, 이 역은 두 번째로 높다는 일언 반구의 언급도 없는 채로 조용하기만 하다.

모 해장국집 체인(?)은 대한민국에서 두번째로 잘 하는 집이라는 슬로건으로 홍보를 하고 있지만, 사실 1등만 기억하기에도 벅찬 세상이다. 모처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네티즌은 이런 현상에 대해 한 마디로 일축했다. 콩까지마.

이렇게 73년부터 콩라인으로 전락(?)하게 된 자미원역은 역무원도 없이, 철조망이 오늘 잠기나 내일 잠기나 하는 아슬아슬한 상태다.

제동 경고 표지판에서 조금만 역 쪽으로 눈을 돌려 보면, 재미있는 명패가 걸려 있다. 인근 주민인지, 시설 직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센스가 재미있다. 지나가는 열차 안에서는 보기 힘든, 열차에 내려서만 알 수 있는 풍경이다.

너무도 조용해서, 바로 옆의 변전소에서 변압기 돌아가는 소리가 그만큼 시끄럽게 들리는 역에 보선원들이 코레일 트럭을 타고 와서 선로 점검을 하는지 선로를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이내 화물열차가 온다. 보선원과 화물열차 기관사는 면식이 있는 건지 아니면 앞 역에서 본 적이 있는 건지 뭐라뭐라 이야기를 한다.

화물열차는 교행을 위해 부본선에 잠시 멈추고, 반대쪽으로 청량리행 무궁화호가 달려온다.

지방도에서 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버스정류장과 함께 그야말로 '버스 회차장만한' 공터가 있다. 나는 그 한구석에 차를 세우고 100m가량 더 걸어가 역을 구경하였다. 이 공터에는 이동식 화장실도 있어서, 있으나마나한 역 화장실을 대신해주고 있다.

오가는 버스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자미원에 들어오는 버스는 하루 1회에 불과하다. 이 역이 폐역을 면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이렇게 철로 쪽으로 보란 듯이 자미원 광고를 해 놓았는데, 정작 서는 열차는 거의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버스도 거의 안 다니다시피 하는 곳이니 그 아래의 콜밴 전화번호가 오히려 더 큰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어디선가 하루에 열차가 두세번 정차하는 역들은 외부인이 접근성 면에서 보기에는 정차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표현을 보았다. 누가 아침에 한편, 저녁에 한편 다니는 열차 시간을 일부러 맞춰서 이런 곳에 구경을 올까...하는 생각이 저 광고판을 보고 들었다.

하지만 주민들로서는 이 2회 다니는 열차가 세상과의 중요한 통로가 될 것이다. 어쩌면 이번에 여객취급중지를 면한 것에 대해 가슴을 쓸어내릴지도 모를 일. 양원역의 예처럼 언제 다시 여객취급중지 이야기가 나올까 걱정되지만, '세상과의 최소한의 통로'는 계속해서 뚫려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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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기위험 : 봉화역의 KTX mini 2012-03-03 23:25:03 #

    ... 의 개성이 느껴져서 재미있다. 가장 통일성이 있어야 할 듯한 역명판이나 폴사인도 주요 역들은 신CI가 적용되어 있지만, 작은 역은 예전 그대로이고, 게다가 자미원역 같은 '짝퉁' 도 있고. 운영주체인 코레일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곳 저곳 다녀본 여행자로서는 이런 것도 각 역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매력으로 보인다.덧) 거듭 ... more

덧글

  • han 2011/10/22 23:37 # 삭제 답글

    예전에 통일호 다닐땐 통일호는 정차하던 역이었는데 (청량리에서 10:00 12:00 22:00 출발열차) 통일호가 무궁화로 바뀌고 나서 정차 열차가 하나둘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결국 무정차 취굽 직전까지 갔네요.그래도 무정차 처리는 면해서 다행입니다.
  • Tabipero 2011/10/24 20:26 #

    완급 개념도 없이, 단거리건 장거리건 죄다 무궁화니 또 그런(표정속도를 높이기 위해 중간 정차역을 생략하게 되는) 맹점이 있지요. 지금 정차하는것도 그나마 만만한(?) 제천-아우라지간 꼬마열차니...
  • 택씨 2011/10/24 09:32 # 답글

    영월, 태백으로 갈 때는 거의 38번 국도를 따라 가서 그런지 이 쪽은 정말 생소하게 보이는군요. 예전에 탄광다닐 땐 함백역으로 기차를 타고 간 적도 있었는데 말이죠;;
  • Tabipero 2011/10/24 20:30 #

    제가 함백에서 고개를 넘어서 그렇지, 38번 국도로부터라면 의외로 그리 멀지는 않습니다.
    함백역을 거치는 함백선은 2007년부터 여객열차가 다니지 않는다고 하네요. 동 구간의 태백선은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사가 완만한 함백선은 화물이 주가 되었지요.
  • 뽀다아빠 네모 2011/10/24 13:38 # 답글

    추전역은 정말 많이 들었는데....그렇군요. 이곳이 2번째로 높은 곳이었군요. 이제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 Tabipero 2011/10/24 20:31 #

    왜 추전역과 인지도에서 그렇게 차이가 날까 하고 생각해보니, 아무리 봐도 2등의 비애 같아 보이는 것이^^;;;
    저 말고 적어도 한 분은 더 기억해주신다고 하니 포스팅한 보람이 있습니다.
  • 구르미 2020/06/25 00:04 # 삭제 답글

    저는 2번만 기억합니다. 자미원 2번째로 높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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