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돌아오는 길, 동해남부선
 


미포 건널목.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널목을 꼽으라면 순위권에 들지 않을까 싶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데는, 동대구까지 일부러 동해남부선을 이용했다. 부산(해운대)-동대구 기준으로 경부선에 비해 운임도 3천원 정도 비싸고, 시간은 배 이상 걸리지만, 바닷가를 볼 수 있는 절경의 노선이라고 들어서, 일부러 타 보기로 했다.

우선은 해운대역에서 출발.



부전행 새마을호가 연착한 탓인지, 내가 탈 무궁화호는 예정보다 8분 연착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중간에 교행 몇번 하고 나니 동대구역에는 1분 정도 조착.

무궁화 제 1776열차 동대구행. 4량 편성이다.

나는 치밀한 계산 하에 4n+1의 좌석이 해변가일 것으로 생각해서 49번석을 끊었는데,

막상 타보니 열차가 거꾸로 맞춰져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한건
(<-부전방향) [4호차 72번석....4호차 1번석]-[3호차 72번석...3호차 1번석]-[2호차 72번석....2호차 1번석]-[1호차 72번석...1호차 1번석]-[기관차](동대구 방향->)이었는데,

이 열차의 편성은
(<-부전방향) [4호차 1번석....4호차 72번석]-[3호차 1번석...3호차 72번석]-[2호차 1번석....2호차 72번석]-[1호차 1번석...1호차 72번석]-[기관차](동대구 방향->)
이다.

설명이 복잡했는데, 그러니까 4n+1은 바다 반대쪽.

이런 낚였다!


어쨌든...지나간 걸 이제 와서 뭐라 할 수도 없고, 일단 적당히 창가에 가서 앉았다. 달맞이고개를 둘러가는 해변은 볼 수 있겠지.

듣던대로 절경이었다. 날이 좀만 맑았으면 좋았을텐데.
차창 밖으로는 끝없이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다.

이 블로그에서도 밝힌 적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바닷가를 달리는 열차를 무지 좋아한다. 동해남부선 복선 전철화 공사가 완공되면 이 구간이 이설되어 더 이상 열차가 다니지 않는단다. 그야 쭉 뻗은 철로를 달려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도 좋지만, 왠지 이런 절경을 더 이상은 철도로 즐기지 못할 생각을 하니, 아쉬웠다. 과연 이 차창 풍경은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일까.

어쨌든 이대로 포항까지 바닷가에 쭉 붙어갔으면 좋겠지만, 송정 이후 바닷가는 월내 정도에서 잠깐 보였다.

아, 이자리는 다음역인 송정에서 마침 자리 주인이 와서 비켜줬다.

가는 도중 에끼벤 해운대에서 산 한솥도시락을 먹었다. 3300원에 돈까스, 제육볶음에 김치나 콩자반 등 제법 반찬도 충실하고 맛있었다. 다만 대체로 좀 짰는데, 경상도의 맛인지, 한솥도시락이 원래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사투리 억양이 남아 있는 표준말을 구사하는 여객전무님의 정차역 방송을 들으면서, 밥도 먹었겠다 잠이 슬슬 오데...

잠을 깨보니 이곳은

그렇다. 신라의 달밤 종소리가 들려오는 불국사역.

가는 중에 웬 능(陵)도 보이고, 안압지로 추정되는 유적지도 보였다.

경주역 근처에 침대차가 서있던데, 이때껏 침대차를 두 눈으로 구경한 적 있었던가...아무튼 그렇게 많이 있는 침대차를 본 건 처음이었다.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바로 그 '바다쪽'으로 보였다. 자리도 웬만큼 차서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더군.

그러게 해운대역에서 이거 바다쪽이냐고 한번만 물어볼걸(...)

경주를 지나니 교행하는 횟수가 부쩍 는다. 경주역의 부전-청량리 무궁화호 일명 '근성호'를 시작으로, 영천역이나 이름을 까먹은 신호장(정확히 말하면 폐역)등등에서 서울-포항 새마을호, 동대구-포항 무궁화호 등등을 보았다.

특이한게 동대구-포항 무궁화호는 구특전이나 새마을호 격하 무궁화호가 주로 편성되는 듯 했다. 유선형 차량에 무궁화호 도색을 한 차량이 동대구역에 가까워지니 굉장히 많이 보였는데, 구특전이 그렇게 많았나 싶었다. 멀리서 봐서는 좌석은 옛날에 무궁화호에서 쓰던 일명 '폭탄좌석'을 박아놓은 것 같아 보이는데, 역시 잘 모르겠다.

5년 정도 전에 일명 '구특전'을 타본 적 있었다. 동대구역에서 '앗싸 무궁화호 가격에 새마을호 타는구나' 했는데 웬걸, 차량은 승차감이 좋지 않았고 많이 흔들리는 것 같았으며 뭔가 힘이 딸리는 것 같았다. 결국 이 열차는 영등포역에 20분가량 연착했다는(...)

사실 여기서 '싸궁화(CDC 개조 무궁화호)'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어제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싸궁화는 동대구-마산에 편성된다더란다.

동해남부선 하면 듣보잡인 줄 알았는데 선로사용률이 은근히 높은 게, 복선 전철화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철덕스러운 이야기는 그만하고, 경산 근방에서 저렇게 연밭(?)을 보았다. 이건 연밭이 거의 끝날 때 찍은 거고, 연밭이 굉장히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초여름쯤 되면 연꽃이 장관을 이루지 않을까 싶다.

경산 부근부터는 열차는 새로 놓인 선로를 달린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종점인 동대구역에.

"긴 시간동안 승차 수고하셨습니다." 이 말이 생각난다. 일본 철도에서 종점이 가까워 오면 나오는 방송 메트 일부다. "長らくのご乗車、お疲れ様でした" 정말 긴 시간 승차 수고하셨습니다.

주위를 보니 해운대에서 보이던 사람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누가 경부선 놔두고 동해남부선 투어(*엄밀히 말하자면 동해남부선은 부전에서 포항까지고, 경주-영천은 중앙선, 동대구-영천은 대구선이다) 를 할까.

느긋하게 돌아감의 미학, 이게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뭐 그렇게 따지자면, 부산 여행은 여기 이 동대구역으로 끝이었다. 동대구역에서는 KTX로 서울까지 올라왔으니.


by Tabipero | 2008/09/01 22:30 | 대한민국 여행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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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전기위험 : 해운대(8/2) at 2009/08/29 21:08

... ** 날이 날이니만큼 오늘은 일본여행기를 쉬고, 철분도 쪽 빼서 해운대 간 사진을 몇 개 올립니다.철도 이야기가 없어 아쉬우신 분들은 이쪽으로.명실공히 여름휴가의 절정인 8월 초, 백만 인파가 몰렸다는, 정확히 말하면 그 다음날 해운대를 가 보았다. 저 때가 아침 10시를 넘겨서였는데, 아침 열시에 이 ... more

Commented by .. at 2008/09/02 23:59
이 포스트 본 후에 동해남부선이랑 미포건널목으로 검색해 봤어요. 미포 건널목이 정말 이쁘네요.
샌프란시스코 같아요. ^^
Commented by Tabipero at 2008/09/03 21:00
샌프란시스코도 정말 좋은 곳이었죠. 비행기 스케줄 때문에 본의 아니게 일주일을 체류했던 곳이지만 더 있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또한 이번 부산 여행에서 부산의 아름다움을 알아온 것 같아 기쁘네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08/09/04 21:48
한솥은 지역차 정도가 아니라, 애제 가게마다 맛내기가 다르더군요.
Commented by Tabipero at 2008/09/04 21:53
한솥의 맛이 아니라 할매 손맛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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